한국자동차공학회가 정리한 글로벌 인사이트 목록을 보면 자율주행 관련 주제가 꾸준히 올라온다. 차량 내부 네트워크, 사이버 보안, 소재 개발까지 걸쳐 있는데 공통점이 하나 있다. 자율주행 기술을 이야기하면서도 실제로 다루는 건 인식 알고리즘이 아니라 그 알고리즘을 차에 태우기 위한 주변 조건이다. 일반 보도는 "몇 킬로미터를 무사고로 달렸다", "레벨 3 인증을 받았다"는 숫자를 앞세운다. 현장에서 양산차에 기능을 얹는 쪽이 붙잡고 있는 문제는 조금 다르다.
## 배경: 왜 중요한가
지난 몇 년간 자율주행 기술의 성능 곡선은 확실히 올라갔다. 카메라·레이더·라이다 융합, 엔드투엔드 신경망 제어, 대규모 주행 데이터 학습까지 방향이 어느 정도 정리됐다. 로보택시가 특정 도시에서 유상 운행을 하고, 승용차에는 조건부 자동화 기능이 옵션으로 들어간다. 기술이 되느냐 안 되느냐의 질문은 대체로 끝났다.
문제는 그다음이다. 시연 차량 한 대가 잘 달리는 것과, 같은 기능을 수십만 대에 넣고 10년 동안 문제없이 돌리는 것은 다른 일이다. 시연 차량은 정비된 상태에서 정해진 구역을 달린다. 양산차는 센서 커버에 흙이 묻고, 카메라 브래킷이 미세하게 틀어지고, 8년 된 배선 커넥터에 접촉 저항이 생긴 상태로 달린다. 소프트웨어는 무선 업데이트로 계속 바뀌는데 그 아래 하드웨어는 출고 시점에 고정돼 있다.
여기에 규제가 겹친다. 유럽의 사이버보안·소프트웨어 업데이트 규정, 기능안전과 의도된 기능의 안전(SOTIF) 관련 표준, 사고 시 데이터 기록 요구가 잇따라 들어왔다. 자율주행 기술을 파는 회사가 아니라, 그 기능을 얹은 차를 파는 회사가 이 요구를 다 받아낸다. 개발비보다 검증비와 사후 대응비가 더 커지는 구조다.
## 핵심: 일반 기사가 놓치는 지점
기사는 보통 "인지 정확도 99.x%"를 성과로 쓴다. 현장에서 그 숫자는 출발점이지 결론이 아니다. 남은 0.x%가 어떤 상황에서 발생하는지, 그때 차가 어떻게 행동하는지, 그 행동이 기록되고 설명될 수 있는지가 실제 비용을 만든다.
### 세부 포인트 1 — 검증할 수 없는 기능은 넣지 못한다
기능안전 체계에서는 고장이 나면 안전한 상태로 가면 된다. 자율주행은 여기서 한 겹이 더 붙는다. 부품이 정상 동작하는데도 인식이 틀릴 수 있다는 점, 즉 고장이 아닌 한계에서 오는 위험을 다뤄야 한다. 이건 부품 신뢰도 계산으로 풀리지 않는다. 시나리오를 정의하고, 그 시나리오를 실제로 돌려 보고, 남은 위험이 받아들일 만한 수준이라는 근거를 남겨야 한다.
문제는 시나리오 수가 사실상 무한하다는 것이다. 실차 주행만으로는 감당이 안 되니 시뮬레이션과 하드웨어 인 더 루프 시험이 들어온다. 그런데 시뮬레이션 결과를 인증 근거로 쓰려면 그 시뮬레이션이 현실을 얼마나 재현하는지를 또 증명해야 한다. 검증 도구 자체를 검증하는 단계가 생기는 셈이다. 최근 자율주행 조직에서 인력이 늘어나는 쪽이 인지 알고리즘 팀이 아니라 시나리오·검증·툴체인 팀인 이유가 여기 있다.
### 세부 포인트 2 — 소프트웨어는 바뀌는데 하드웨어는 안 바뀐다
무선 업데이트로 기능을 개선하는 건 이제 표준이 됐다. 실무에서 이게 만드는 부담은 두 가지다.
첫째, 연산 자원이 고정돼 있다. 출고 시점에 얹은 제어기 성능과 전력, 발열 여유 안에서 이후 몇 년치 소프트웨어를 다 돌려야 한다. 모델은 커지는데 하드웨어는 그대로다. 그래서 양산 개발 단계에서 성능 마진을 얼마나 남겨 두느냐가 나중에 어떤 기능을 팔 수 있느냐를 결정한다. 이 판단은 대체로 상품기획이 아니라 전자·열설계 쪽에서 먼저 걸린다.
둘째, 업데이트 자체가 관리 대상이 된다. 어떤 차에 어떤 버전이 들어가 있는지, 업데이트가 실패하면 어떻게 되돌리는지, 특정 버전에서 사고가 나면 그 버전의 동작을 재현할 수 있는지를 다 갖춰야 한다. 차량 내부 네트워크와 사이버 보안이 자율주행 기술 논의에 계속 따라붙는 것도 이 때문이다. 기능 하나를 넣는 게 아니라 차량 전체의 소프트웨어 이력 관리 체계를 새로 만드는 일이다.
## 그래서 뭘 봐야 하나
투자·산업 관점에서 볼 포인트는 몇 가지로 정리된다.
첫째, 완성차와 부품사의 자율주행 관련 지출이 어디로 가는지다. 인지 성능 개발보다 검증·시뮬레이션·데이터 인프라 쪽 비중이 커지고 있다면, 수혜 영역도 센서 공급사에서 시나리오 도구·시험 서비스·데이터 관리 쪽으로 넓어질 여지가 있다.
둘째, 제어기 통합 속도다. 분산된 ECU를 소수의 고성능 제어기로 묶는 흐름이 실제 양산 일정에 반영되는지에 따라 반도체, 전원, 냉각, 고속 통신 부품의 수요 구조가 달라진다. 발표 자료보다 양산 적용 차종과 시점을 확인하는 편이 낫다.
셋째, 책임 소재를 정하는 제도의 진행이다. 조건부 자동화에서 사고가 났을 때 운전자, 제조사, 소프트웨어 공급사 중 누가 얼마를 부담하는지가 정리되지 않으면 기능 출시 자체가 늦어진다. 보험 상품 설계와 사고 데이터 기록 의무의 구체화 정도가 실질적인 진도를 보여준다.
다만 이 흐름이 언제 실적으로 나타날지는 별개 문제다. 검증 체계에 들어가는 비용은 지금 발생하고 매출은 기능이 실제로 팔린 뒤에 생긴다. 시차가 짧지 않다.
자율주행 기술의 남은 과제는 더 잘 인식하는 것보다, 잘 인식하지 못하는 경우를 정의하고 증명하고 기록하는 쪽에 가깝다. 성능 발표보다 검증 체계와 제도 정비의 진도를 함께 보는 편이 현실에 가깝다. 기술이 준비됐다는 말과 팔 수 있는 상태가 됐다는 말 사이의 거리가 지금 이 산업의 핵심 이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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