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너지기술연구원이 정리한 3월 글로벌 수소 기술·산업 동향 리포트가 공유됐다. 수전해 효율, 청정수소 인증, 대형 프로젝트 최종투자결정(FID) 같은 항목이 예년처럼 나열된다. 이런 리포트는 대개 기술 성숙도와 정책 일정으로 정리되고, 읽는 쪽도 그 순서를 따라간다. 현장에서 보면 순서가 다르다. 수소 산업 동향에서 실제로 돈이 갈리는 지점은 어떤 기술이 앞섰느냐가 아니라, 그 설비가 하루에 몇 시간 어떤 부하로 돌아가느냐다.
## 배경: 왜 중요한가
지난 몇 년간 수소는 두 번의 국면을 지났다. 2020~2022년은 선언의 시기였다. 국가별 로드맵이 나왔고, 기가와트급 수전해 프로젝트 발표가 이어졌다. 2023년 이후는 정리의 시기다. 유럽과 호주, 중동에서 발표됐던 대형 프로젝트 중 상당수가 FID 단계에서 지연되거나 축소됐다. 이유는 기술 실패가 아니라 단가다. 오프테이크(장기 구매 계약)를 잡지 못한 프로젝트는 금융이 붙지 않았고, 금융이 붙지 않으니 착공이 안 됐다.
그 사이 기술 쪽 숫자는 계속 좋아졌다. 알칼라인(AEL)과 고분자전해질막(PEM) 수전해 모두 스택 효율이 개선됐고, 고체산화물(SOEC)은 실증 규모가 커졌다. 리포트에 실리는 kWh/kg 수치는 매년 조금씩 내려간다. 문제는 이 숫자가 정격 운전 기준이라는 점이다. 실험실과 파일럿에서 정격으로 연속 운전할 때 나오는 값이다.
실제 그린수소 설비는 정격으로 돌지 않는다. 재생에너지 전력을 받아 쓰기 때문에 부하가 하루에도 여러 번 오르내리고, 전력 가격이 비싼 시간대에는 아예 세운다. 이용률이 30~50% 구간에 머무는 설비가 흔하다. 그러면 kg당 수소 원가에서 전력비보다 설비 상각이 차지하는 비중이 커진다. 수소 산업 동향을 볼 때 효율 숫자 하나로 경쟁력을 판단하기 어려운 이유가 여기 있다.
## 핵심: 일반 기사가 놓치는 지점
리포트와 기사는 기술을 명사로 다룬다. PEM, AEL, SOEC, 암모니아 크래킹, 액화수소 운반선. 현장에서는 이걸 동사로 본다. 켜고, 올리고, 내리고, 세우고, 다시 켠다. 이 동작의 횟수와 속도가 설비 수명과 유지비를 결정한다.
### 세부 포인트 1 — 이용률이 효율보다 먼저다
수전해 설비의 자본비를 kg당 원가로 환산할 때 분모는 연간 생산량이다. 이용률이 절반으로 떨어지면 kg당 상각비는 두 배가 된다. 스택 효율을 5% 개선해 얻는 이득보다, 이용률을 40%에서 60%로 올려서 얻는 이득이 대체로 훨씬 크다. 그래서 설비를 어디에 짓느냐가 어떤 스택을 쓰느냐보다 앞선 결정이 된다. 재생에너지 자원이 좋은 곳, 계통 연결이 되는 곳, 수요처가 가까운 곳. 세 조건이 겹치는 부지는 생각보다 드물다.
여기에 부하 변동 자체가 비용을 만든다. 기동·정지가 잦으면 전극과 분리막의 열화가 빨라지고, 스택 교체 주기가 앞당겨진다. 스택 교체는 수전해 설비 생애주기 비용에서 무시할 수 없는 항목이다. 정격 효율표에는 이 항목이 들어가지 않는다. 부하 추종 성능이 좋다고 알려진 PEM과, 초기 투자비가 낮은 AEL 사이의 선택이 단순 비교로 끝나지 않는 이유다.
### 세부 포인트 2 — 수소는 만드는 것보다 옮기고 쓰는 데서 막힌다
생산 기술은 여러 갈래로 발전했지만, 병목은 그 뒤에 있다. 기체수소는 부피당 에너지 밀도가 낮아 압축이나 액화가 필요하고, 액화에는 kg당 상당한 전력이 들어간다. 암모니아로 바꿔 옮기면 운송은 쉬워지지만 다시 수소로 되돌리는 크래킹 단계에서 에너지와 설비가 추가된다. 어느 경로든 생산 단가 위에 물류 단가가 겹겹이 쌓인다.
배관은 더 까다롭다. 기존 천연가스 배관에 수소를 섞어 보내는 혼입은 여러 나라에서 실증 중이지만, 혼입률이 올라가면 재질 취성, 밸브·계기 호환성, 말단 연소기기 조정 같은 문제가 순서대로 나온다. 배관을 새로 깐다면 이번엔 인허가와 부지 문제가 붙는다. 리포트에서 인프라 항목이 늘 뒤쪽에 배치되는데, 프로젝트 일정을 실제로 밀어내는 건 이쪽인 경우가 많다.
수요 쪽도 마찬가지다. 수소가 확실히 필요한 곳은 정유·암모니아·메탄올 같은 기존 수소 소비처와 제철 환원 공정이다. 이들은 이미 값싼 개질수소를 쓰고 있어서, 청정수소로 바꾸려면 가격 차이를 누가 부담할지가 정해져야 한다. 유럽의 탄소국경조정, 각국의 청정수소 인증과 보조금이 그 역할을 맡는데, 제도가 확정되기 전까지 구매자는 장기 계약에 서명하지 않는다.
## 그래서 뭘 봐야 하나
수소 산업 동향을 볼 때 몇 가지를 나눠서 보는 편이 낫다.
첫째, 발표 용량과 FID 통과 용량을 구분한다. 발표 기준 파이프라인은 계속 커지지만, 실제 착공으로 넘어간 비중은 그보다 훨씬 작다. 이 비율의 변화가 산업의 실제 속도에 가깝다.
둘째, 오프테이크 계약의 존재 여부를 본다. 구매자가 정해졌고 가격이 합의된 프로젝트와, 정부 발표만 있는 프로젝트는 성격이 다르다.
셋째, 생산보다 인프라와 수요 쪽 기업의 수주 흐름을 본다. 압축기, 액화 설비, 저장 탱크, 배관 소재, 계측·안전 기기처럼 어떤 경로가 이기든 필요한 품목이 있다. 반대로 특정 경로에만 붙어 있는 품목은 경로 선택에 따라 결과가 크게 갈린다.
넷째, 제도 일정을 본다. 청정수소 정의와 인증 기준, 보조금 지급 방식이 확정되는 시점이 프로젝트 FID와 붙어 움직인다. 다만 제도 일정은 여러 차례 미뤄진 전례가 있어 그대로 받아들이기는 어렵다.
수소는 기술이 안 되는 산업이 아니라, 가격과 계약이 아직 안 맞은 산업이다. 리포트의 기술 항목은 대체로 개선 방향으로 움직이고 있고, 앞으로도 그럴 가능성이 높다. 판단이 필요한 쪽은 그 기술이 실제로 몇 시간 돌아가고, 나온 수소를 누가 얼마에 사가느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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