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본 콘텐츠로 건너뛰기

산업용수 예산 3,862억원, 출자와 댐 증축으로 읽는 2027년 기후부 예산안

기후에너지환경부가 2027년 예산안을 전년보다 18.3% 늘어난 25조7,319억원으로 편성했다. 워터저널 보도에 따르면 역대 최대 규모이고, 반도체와 AI 데이터센터에 필요한 전력·용수 기반시설에만 1조9,351억원이 들어간다. 기사 제목만 보면 돈이 늘었으니 물과 전기가 제때 나올 것처럼 읽힌다. 현장에서 보면 다르다. 예산이 잡힌 해와 물이 배관을 타고 나오는 해는 같지 않고, 산업용수 예산 안에서도 공사비와 출자금은 성격이 전혀 다른 돈이다. 배경: 왜 중요한가 이번 예산안의 네 가지 축은 전력·용수 기반시설 확충, 에너지 대전환, 녹색전환, 기후재난 안전 확보다. 기후부 발표를 보면 첨단산업 전력·용수 1조9,351억원 가운데 전력이 1조5,489억원, 용수가 3,862억원이다. 전력 쪽은 수요유치형 변전소, 송전단 에너지저장장치(ESS), 전력망 지중화, 해상풍력 공동접속설비 같은 항목이 들어간다. 용수 쪽은 호남권 반도체산단 용수공급 1,196억원, 충청권 첨단산업 용수공급 81억원, 한국수자원공사 출자 2,500억원, 호남권 공공폐수 처리 85억원으로 구성된다. 물 수요가 커지는 이유는 두 갈래다. 반도체 공정은 미세 오염물질을 씻어내기 위해 초순수(불순물을 극한까지 제거한 공정용수)를 쓰고, 데이터센터는 서버 발열을 잡는 냉각에 물을 쓴다. 보조 자료로 삼은 『물론입니다 3: AI도 목이 마르다』가 짚는 지점이 정확히 이것이다. AI가 고도화될수록 열 발생량이 늘고, 그 열을 제어하는 냉각 과정에 물이 들어간다. 같은 매체에 소개된 해외조사보고서 제목에 따르면 전 세계 데이터센터의 25%가 물부족 지역에 위치한다. 입지와 수원이 어긋나는 문제는 해외만의 일이 아니다. 물 투자는 산업용수에만 쏠리지 않는다. 수질개선 예산은 74.7% 늘어난 5,986억원이고, 도시침수 예방 예산은 221억원에서 815억원으로 268.8% 증가했다. 전기차 보급 2조1,403억원, 재생에너지 금융지원 1조5,108억원 같은 큰 항목에 가려지지만, 물 쪽 증...

반도체 물 리스크는 수량이 아니라 수질에서 온다 — 초순수와 재이용의 실제 병목

기후변화로 인한 재해의 69%가 물 관련이라는 통계가 나왔고, 국내 미세전자 산업용수 시장은 2024년 1조7천억 원에서 2029년 2조4천억 원으로 연 6.2% 성장이 전망된다. 기사 헤드라인은 대개 "물 부족이 반도체를 위협한다"로 정리된다. 현장에서 보면 순서가 조금 다르다. 팹이 실제로 멈추는 지점은 저수지 수위가 아니라, 들어온 물을 초순수 규격으로 만들어내는 설비의 처리 한계다.

배경: 왜 중요한가

기후 대응은 감축과 적응 두 축으로 나뉜다. 감축은 2050 탄소중립이라는 숫자가 있어서 계획도, 예산도, 민간 투자도 붙었다. 적응은 목표치가 없다. 물 인프라가 오래 정체된 이유가 여기 있다. 홍수 방어 시설이나 정수장 증설은 "몇 년까지 얼마"라는 형태로 목표를 세우기 어렵고, 그래서 투자 우선순위에서 계속 밀렸다.

그런데 산업 쪽에서 사정이 달라졌다. TSMC의 가뭄 사례가 주목받은 이후 "No Water No Microchips"라는 표현이 통용되고, 반도체·2차전지 같은 첨단 제조가 물 확보를 사업 리스크로 명시하기 시작했다. 국내 미세전자 산업용수 시장이 글로벌의 약 15%를 차지한다는 추정도 나온다. 전체 물산업 성장률이 3~4%인데 이 분야만 6% 대라는 건, 수요가 공공이 아니라 산업에서 나온다는 뜻이다.

여기서 중요한 건 규모가 아니라 성격이다. 산업용수는 공공 상수도와 달리 수질 사양이 계약서에 숫자로 박힌다. 저항률, 총유기탄소(TOC), 입자 수, 특정 이온 농도까지 관리 대상이다. 이 조건을 못 맞추면 물이 있어도 쓸 수 없다.

핵심: 일반 기사가 놓치는 지점

물 부족 기사는 취수원과 강수량을 본다. 팹의 유틸리티 담당자가 매일 보는 건 원수 수질의 변동 폭과 전처리 설비의 여유율이다. 이 둘은 같은 문제가 아니다.

원수가 나빠지면 수량이 충분해도 생산량이 줄어든다

초순수 공정은 원수를 받아 전처리 → 역삼투(RO) → 이온교환 → 탈기 → 최종 폴리싱을 거친다. 각 단계는 앞 단계가 일정 수질을 넘겨준다는 전제로 설계돼 있다. 호우 뒤 탁도와 유기물이 올라오거나 갈수기에 이온 농도가 올라가면, 전처리 부하가 커지고 RO 막의 회수율을 낮춰 운전해야 한다. 회수율을 낮추면 같은 취수량에서 나오는 초순수가 줄고, 버리는 농축수는 늘어난다.

즉 원수 수질 악화는 곧바로 실질 생산 용수량 감소로 나타난다. 언론이 말하는 "가뭄"이 오기 한참 전부터, 계절 단위 수질 변동만으로도 설비 여유율은 깎인다. 기후변화가 물 리스크를 키운다는 말의 실제 내용 대부분이 이쪽이다.

재이용은 물을 다시 쓰는 게 아니라 '어떤 물'을 다시 쓰느냐의 문제

반도체 폐수 재이용률을 높인다고 할 때, 어려운 건 배관을 다시 까는 일이 아니다. 팹에서 나오는 폐수는 공정별로 성분이 전혀 다르다. 불산 계열, 암모니아 계열, CMP 슬러리, 유기용제 배출 라인을 섞어버리면 재이용 난이도가 급격히 올라간다. 그래서 재이용률을 실제로 끌어올리는 곳은 예외 없이 배출 단계에서 분리 배관을 깔아둔 곳이다. 기존 팹에 나중에 붙이기가 가장 어려운 부분이기도 하다.

2차전지는 조건이 하나 더 붙는다. 반도체는 실리콘 기반이라 물만 회수하면 되지만, 2차전지 폐수에는 리튬·니켈·코발트처럼 값이 나가는 금속이 녹아 있다. 물 재이용과 자원 회수를 한 공정에서 같이 해결해야 경제성이 선다. 반대로 말하면, 회수 대상 금속 가격이 떨어지면 같은 설비의 투자 회수 기간이 흔들린다.

그리고 재이용과 해수담수화 모두 에너지를 쓴다. 낮은 수질의 물을 초순수 수준까지 올리는 일이라 당연하다. 물 재이용은 적응 기술로 분류되지만, 전력 소비를 통해 감축 지표와 직접 연결된다. RE100이나 내부 탄소 회계를 적용받는 제조사 입장에서 재이용률과 배출량이 반대 방향으로 움직일 수 있다는 뜻이다. 에너지 효율이 물 기술의 부가 조건이 아니라 채택 여부를 가르는 조건인 이유다.

그래서 뭘 봐야 하나

첫째, 신규 팹 투자 발표에서 전력 확보 계획만큼 용수 계약 구조를 볼 필요가 있다. 확보 총량보다 수질 사양과 공급 안정성 조항이 실제 리스크를 더 잘 보여준다.

둘째, 수처리 업체를 볼 때 매출 구성을 나눠서 볼 만하다. 설비 납품(EPC) 중심인지, 운영·약품·막 교체 같은 반복 매출이 붙는지에 따라 실적의 성격이 다르다. 초순수는 운전 노하우가 진입장벽이라 후자 비중이 의미 있는 지표가 된다.

셋째, 물 분야 유니콘으로 알려진 그래디언트가 12~13년 걸렸다는 점은 참고할 만하다. 물 기술은 레퍼런스 확보에 시간이 오래 걸리고, 그 기간을 견딘 회사가 고농도 폐수 처리나 리튬 회수 같은 고부가 영역으로 넘어갔다. 저부가 활용처(하천유지용수, 조경용수)에 머무는 사업과 산업용수·자원 회수로 올라가는 사업은 다르게 봐야 한다.

넷째, AI 정수장 논의는 아직 에너지 효율 최적화 수준에 있다. 완전 자율 운전 인증 같은 표준화가 실제로 만들어지는지가 이 분야가 산업이 되는지 판단하는 기준이 될 것이다. 다만 표준 제정은 속도가 느리고, 그 자체로 투자 시점을 잡기는 어렵다.

물 리스크는 "물이 있느냐"가 아니라 "쓸 수 있는 규격의 물을 안정적으로 만들 수 있느냐"의 문제다. 통계와 시장 전망이 보여주는 성장률 뒤에는 원수 수질 변동, 재이용을 위한 배관 설계, 에너지 소비라는 구체적 제약이 있다. 물 리스크를 수량 문제로만 보면 투자와 정책의 초점도 취수원 확보에 머문다. 실제 병목은 그 다음 단계에 있다.

댓글

이 블로그의 인기 게시물

아파트 공사비는 왜 오르는가: 층상 배관과 4Bay가 말해주는 건설 원가의 구조

최근 몇 년간 아파트 분양가 상승의 원인으로 지목되는 것은 대체로 세 가지다. 자재비, 인건비, 그리고 금리. 언론 보도는 대개 여기서 멈춘다. 그런데 현장에서 도면을 보고 공정표를 짜본 사람이라면 이 설명이 절반쯤만 맞다는 걸 안다. 아파트 공사비를 밀어 올리는 진짜 힘은 원자재 시황이 아니라, 지난 10년간 누적된 규제·인력·설계 표준의 구조적 변화에 있다. 이것들은 시황처럼 내려오지 않는다. 배경: 왜 중요한가 건설은 제조업과 달리 원가 구조가 눈에 잘 띄지 않는다. 반도체 팹은 장비 리스트와 감가상각으로 원가를 역산할 수 있지만, 아파트 한 동의 공사비는 수십 개 공종의 시간과 인력이 서로를 밀고 당기며 결정된다. 어떤 항목이 얼마나 올랐는지가 아니라, 어떤 항목이 다른 항목의 공기(工期)를 얼마나 늘리는지가 핵심이다. 지난 10년간 이 상호작용을 바꾼 변수는 크게 세 갈래다. 첫째는 안전 규제다. 중대재해처벌법을 포함한 책임 법규 강화는 단순히 안전 관리비 항목을 늘린 것이 아니라, 작업 자체의 속도를 늦췄다. 고소작업 전 점검, 밀폐공간 작업 절차, 장비 이동 시 신호수 배치 같은 조치는 개별적으로는 몇 분이지만 수천 번 반복되면 공기 몇 주가 된다. 공기가 늘면 현장 관리비, 금융비용, 장비 임대료가 함께 늘어난다. 둘째는 인력이다. 미장, 조적, 타일 같은 습식 공종은 숙련도가 곧 품질이자 속도인 영역인데, 이 분야 국내 숙련공은 고령화와 신규 유입 단절로 빠르게 줄고 있다. 외국인 근로자 의존도가 높아지면서 의사소통과 숙련도 편차가 공기 변동성을 키웠다. 셋째는 설계 표준이다. 층간소음 차단 성능, 단열 기준 강화, 열교환 환기 시스템과 시스템 에어컨 사실상 의무화가 겹치면서 천장 속 공간—배관, 덕트, 전기 트레이가 지나는 그 좁은 층—이 급격히 복잡해졌다. 아파트 공사비는 이 세 갈래가 곱해진 결과다. 핵심: 일반 기사가 놓치는 지점 기사들이 "건축비 상승"이라고 뭉뚱그리는 자리에서, 현장은 두 가지를 본다. 하...

산업가스 판매량 감소, 경기 지표보다 먼저 움직이는 신호

경제 전망 기사에서 반도체는 좋고 석유화학·철강은 나쁘다는 식으로 산업을 나누는 건 익숙한 그림이다. 그런데 산업가스 업계는 반도체가 좋아진다는 전망에도 "체감이 안 된다"고 말한다. 2022년까지 계속 올라가던 국내 산업가스 판매량은 2023년부터 꺾였고, 그 흐름이 이어졌다. 산업가스는 전방 산업의 가동률을 거의 실시간으로 따라가기 때문에, 통계보다 먼저 움직이는 숫자다. 배경: 왜 중요한가 산소·질소·아르곤·수소·탄산은 제품이 아니라 공정 조건이다. 철강 제련에 산소가 들어가고, 반도체 팹은 질소로 챔버와 배관을 채우고, 용접에는 아르곤이, 식음료와 냉동물류에는 탄산과 드라이아이스가 쓰인다. 이 가스들은 재고로 쌓아두기 어렵고 대부분 파이프라인이나 탱크로리로 그날그날 흘러간다. 공장이 라인을 하나 세우면 그만큼의 가스 수요가 바로 사라진다. 그래서 산업가스 판매량은 경기의 후행 지표가 아니라 가동률의 동행 지표에 가깝다. 생산 계획이 줄면 다음 달 통계가 나오기 전에 가스 주문량부터 줄어든다. 기사에서 충전·판매 업계가 판매량 10% 감소를 언급하는 대목은, 제조업 현장의 가동률이 그만큼 내려갔다는 말과 같은 뜻이다. 여기에 원가 구조가 겹친다. 공기분리장치(ASU)는 공기를 압축하고 냉각해 성분별로 나누는 설비라 전기가 원가의 큰 부분을 차지한다. 산업용 전기요금이 오르면 액화가스 가격에 반영될 수밖에 없다. 판매량은 줄고 원가는 오르는 조합이 지금 산업가스 시장이 놓인 자리다. 핵심: 일반 기사가 놓치는 지점 경기 전망 기사는 산업별로 좋다/나쁘다를 나눈다. 산업가스는 그 분류를 가로지른다. 한 충전소가 반도체 팹, 조선소, 자동차 부품사, 병원, 식품공장에 동시에 공급한다. 특정 산업 하나가 좋아져도 나머지가 눌리면 전체 물량은 회복되지 않는다. "반도체가 좋아진다"는 전망과 "체감이 안 된다"는 현장 반응이 동시에 성립하는 이유다. 세부 포인트 1 — 물량이 회복돼도 수익성은 따로 ...

데이터센터는 건축이 아니라 설비다: 건설사가 넘어야 할 진짜 장벽

데이터센터가 국가 전략 인프라로 지정되는 흐름이 이어지고 있다. 영국은 2024년에 이미 핵심 인프라로 분류했고, 국내에서도 AI 데이터센터 특별법이 상임위를 통과했다. 건설사들은 전담팀을 만들고 시공을 넘어 기획·운영까지 노리겠다고 말한다. 그런데 현장에서 보면 데이터센터 사업의 승부는 건물을 세우는 단계가 아니라, 전력과 냉각 설비를 붙이고 운전을 시작하는 단계에서 갈린다. 배경: 왜 중요한가 숫자만 보면 시장은 확실하다. 건설산업연구원은 2030년까지 연평균 14% 성장을 예상하고, 모르도르 인텔리전스는 한국 시장이 2026년 약 10조 원에서 2031년 22조 원 규모로 커질 것으로 본다. 주택 경기 침체가 길어진 국내 건설사 입장에서 이만한 규모의 신규 수요는 흔치 않다. 대우건설이 데이터센터 TFT를 만들고, 삼성물산이 건축·기계·전기·운영 인력을 한 팀에 모은 것도 같은 이유다. 문제는 이 시장의 원가 구조가 일반 건축과 다르다는 점이다. 일반 오피스나 물류창고는 구조체와 마감이 공사비의 큰 축을 차지한다. 데이터센터는 반대다. 수전 설비, 변압기, UPS, 비상발전기, 냉동기, 배관 계통 같은 기계·전기 설비가 총 투자비의 절반을 넘어가는 경우가 흔하다. 건물은 그 설비를 담기 위한 껍데기에 가깝다. 여기에 냉각 방식이 바뀌고 있다. 공랭식은 랙당 발열이 일정 수준을 넘어가면 물리적으로 감당이 안 된다. 그래서 칩에 냉각판을 밀착시켜 냉각수를 순환시키는 직접 액냉이나, 절연액에 서버를 담그는 액침냉각이 표준으로 올라오고 있다. 삼성물산이 2024년 자체 개발한 액침냉각으로 공랭 대비 냉각 전력을 크게 줄인 사례가 국내에서 자주 인용된다. 냉각이 공기에서 액체로 바뀌면 설계 대상도 바뀐다. 공조 덕트 대신 배관, 펌프, 열교환기, 수질 관리가 주인공이 된다. 핵심: 일반 기사가 놓치는 지점 기사들은 대체로 "데이터센터 건설 붐"과 "건설사 신사업 진출"을 같은 문장에 놓는다. 현장에서 보면 이 둘 사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