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가 정비사업 공사비 검증을 의무에서 재량으로 되돌렸다. 2년 8개월 만이다. 같은 날 뉴스에는 성수1지구와 목동 10단지, 3조 규모 사업장까지 시공사 단독입찰로 마감됐다는 소식이 나란히 붙었다. 규제가 풀렸는데 경쟁은 오히려 줄었다. 기사들은 이 둘을 따로 다루지만, 현장에서 보면 같은 하나의 흐름이다.
## 배경: 왜 중요한가
공사비 검증은 조합이 인허가 서류, 공사계약서, 세부 내역서를 검증기관에 내면 건축·토목 등 공종별 물량과 단가가 적정한지 확인하는 절차다. 2023년 도입 당시 명분은 분명했다. 착공 후 시공사가 증액을 요구하면 조합은 대응할 근거가 없었고, 공사 중단과 소송이 반복됐다. 검증을 의무화하면 최소한 숫자를 검토할 시간은 벌 수 있다는 판단이었다.
문제는 절차가 걸리는 시간이었다. 검증 처리에 수십 일이 붙고, 자료 보완이 오가면 더 늘어난다. 그 사이 자재비와 인건비는 계속 오른다. 한국건설기술연구원 공사비원가관리센터가 집계한 6월 건설공사비지수는 138.22(잠정)로 계속 상승 중이다. 검증으로 아낀 금액보다 지연으로 늘어난 금액이 큰 경우가 생기면서, 조합 쪽에서도 절차를 부담으로 보는 시각이 나왔다. 이번 서울시 공사비 검증 완화는 그 지점을 건드린 조치다.
동시에 시공사 쪽 계산도 달라졌다. 원가율이 오르면서 수주 자체가 이익을 보장하지 않는다. 성수1지구는 2월 1차 입찰에서 GS건설만 참여해 유찰됐고, 목동 10단지는 현장설명회에 여섯 곳이 왔지만 현대건설 단독으로 정리되는 분위기다. 롯데건설 2분기 영업이익이 230% 늘었다는 소식의 근거도 신규 수주 확대가 아니라 원가율 개선과 선별 수주였다. 토목은 상반기 누적 92억 원 매출총손실을 기록했다.
## 핵심: 일반 기사가 놓치는 지점
기사는 대체로 "규제 완화 → 사업 속도 개선"으로 정리한다. 현장 순서는 반대에 가깝다. 공사비 검증이 재량이 되면 검증을 받을지 말지를 조합이 정하는데, 그 결정에 실질적 영향력을 갖는 쪽은 이미 단독으로 들어온 시공사다.
### 검증은 협상력이 있을 때만 작동한다
경쟁 입찰에서는 조합이 검증 결과를 지렛대로 쓸 수 있다. 단가가 높게 나오면 다른 후보를 언급하면 된다. 단독입찰에서는 이 카드가 없다. 시공사를 바꾸려면 입찰 절차를 처음부터 다시 돌려야 하고, 그동안 공사비지수는 또 올라간다. 검증 보고서에 물량 과다가 적혀도 계약을 되돌릴 수단이 없으면 문서 한 장으로 남는다. 서울시 공사비 검증 완화가 문제인 이유는 검증을 없앴기 때문이 아니라, 검증이 원래 작동하던 조건 자체가 시장에서 사라지고 있기 때문이다.
추가분담금이 정비사업 최대 변수로 올라온 것도 이 구조의 결과다. 조합원이 체감하는 금액은 계약 시점 공사비가 아니라 착공 후 증액분까지 더한 값이다. 검증이 있어도 그 증액을 막지 못했는데, 재량이 되면 증액 시점에 대조할 기준선 자체가 없는 사업장이 늘어난다.
### 규제는 줄었는데 시공 책임은 늘고 있다
같은 시기 국토부는 반대 방향으로 움직인다. 주요 공정 영상촬영 의무화를 담은 건설기술진흥법 개정이 12월 추진되고, 발주·설계 단계 책임을 강화하는 건설안전법도 함께 간다. 사고사망만인율은 시공능력평가와 안전 심사 점수에 자동 반영되고, 최근 법원에서 그 통보에 대한 집행정지가 인정될 만큼 업체가 받는 타격이 크다. 품질시험계획도 총공사비 5억 원 이상 토목, 연면적 660㎡ 이상 건축까지 대상이다.
정리하면 가격 쪽 규제는 풀리고 안전·품질 쪽 규제는 조인다. 현장에서는 둘 다 비용이다. 영상촬영 의무화는 장비와 저장, 관리 인력을 부른다. 안전 지표 하나가 다음 수주의 평가 점수를 깎는다. 시공사가 선별 수주로 돌아선 이유는 부동산 경기만이 아니라, 사업장 하나가 만드는 리스크의 총량이 예전과 달라졌기 때문이다. 건설 CEO 평균 임기가 3년이라는 통계도 같은 압력을 다른 각도에서 보여준다.
## 그래서 뭘 봐야 하나
첫째, 단독입찰 비중이다. 경쟁 입찰이 줄어드는 구간에서는 수주 공시가 나와도 그 사업장의 마진 구조를 별도로 봐야 한다. 수주 잔고 증가보다 원가율과 매출총이익률이 실적을 설명하는 국면이다. 롯데건설처럼 주택·건축에서 원가율이 개선돼도 토목과 해외에서 손실이 나는 구조가 흔하다.
둘째, 서울시 공사비 검증 완화 이후 실제로 검증을 선택하는 조합의 비율과, 착공 후 증액 발생 빈도다. 완화의 효과는 인허가 속도 통계가 아니라 여기서 드러난다.
셋째, 안전·품질 규제 강화가 실제 비용으로 잡히는 시점이다. 12월 법 개정이 예정대로 가면 내년 상반기부터 현장 관리비 항목이 달라진다. 스마트 안전장비, 전기계장 설계·시공, 현장 모니터링 쪽 수요는 이 흐름을 따라간다. 다만 산업안전보건관리비 한도 안에서 처리되는 부분이 많아 시장 확대 폭은 제한적일 수 있다.
정비사업은 지금 규제 완화 국면과 책임 강화 국면이 동시에 진행 중이다. 두 흐름이 만나는 자리가 시공사의 선별 수주이고, 그 결과가 단독입찰이다. 공사비 검증을 의무에서 재량으로 바꾼 조치는 절차를 줄였지만, 그 절차가 지켜주던 협상 구도까지 함께 옅어지고 있는지는 앞으로 몇 개 분기의 증액 사례로 확인될 부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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