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4대 회계법인이 감사·세무·M&A 자문에 자체 개발한 AI를 내장하고 있다는 보도가 나왔다. 삼일PwC의 어카운팅 인사이트, 삼정KPMG의 딜마인드처럼 범용 챗봇이 아니라 내부 데이터와 검토 논리를 붙여 만든 도구들이다. 기사만 보면 "AI 도입 경쟁"으로 읽힌다. 현장에서 보면 초점은 다르다. 중요한 건 도입 여부가 아니라, 이들이 왜 시중의 범용 AI를 그대로 쓰지 않고 굳이 조직 맞춤형 AI를 따로 만들었는가다.
## 배경: 왜 중요한가
범용 생성형 AI는 넓게 안다. 대신 특정 조직의 규정, 판단 기준, 과거 사례는 모른다. 회계·세무는 답이 틀리면 곧 리스크가 되는 영역이다. "공정가치로 계속 측정해야 한다"는 답에는 K-IFRS 제1040호라는 근거가 붙어야 하고, 그 근거가 틀리면 답 전체가 무의미해진다. 범용 모델이 그럴듯하게 지어내는 환각(할루시네이션)은 일상 대화에선 넘어가지만 전문 업무에선 그대로 사고로 이어진다.
그래서 회계법인들이 택한 방식은 모델을 새로 훈련시키는 게 아니라, 검증된 내부 자료를 근거로 답하도록 범위를 좁힌 것이다. 회계 기준, 정책 문서, 과거 검토 논리, 거래 데이터를 붙여 AI가 참조할 근거를 통제한다. 삼정KPMG가 재무자문에서 연간 4만 시간을 줄였다고 밝힌 것도, 판단 자체를 AI에 맡겨서가 아니라 자료 수집·대사·초안 같은 반복 작업을 걷어냈기 때문이다. 조직 맞춤형 AI의 핵심은 똑똑한 모델이 아니라, 무엇을 근거로 답하게 할지 정하는 데 있다.
## 핵심: 일반 기사가 놓치는 지점
기사는 "어떤 법인이 어떤 AI를 만들었다"는 결과를 나열한다. 정작 따라 하려는 조직이 알아야 할 건 그 앞 단계다. 남이 만든 도구가 아니라, 내 조직이 만들 수 있는 조건이 무엇인가.
### 세부 포인트 1: 데이터가 정리돼 있어야 AI가 붙는다
회계법인이 세무 AI를 빠르게 만든 건 기준서와 과거 검토 논리가 이미 문서로 축적돼 있었기 때문이다. AI가 참조할 근거가 정돈된 형태로 존재했다는 뜻이다. 딜로이트가 "AI 레디 데이터"를 별도 서비스로 내세우는 것도 같은 이유다. 대부분의 조직은 여기서 막힌다. 규정과 노하우가 담당자 머릿속이나 흩어진 파일에 있으면, 아무리 좋은 모델을 붙여도 참조할 근거가 없다. 조직 맞춤형 AI 검토는 모델 선택이 아니라 "우리 판단 기준이 문서로 정리돼 있나"라는 질문에서 시작해야 한다.
### 세부 포인트 2: AI는 판단이 아니라 판단 근거를 만든다
주목할 부분은 회계법인들이 AI에게 최종 판단을 넘기지 않았다는 점이다. AI는 후보군과 근거를 정리하고, 사람이 결정한다. 이 경계를 어디에 긋느냐가 도구의 성패를 가른다. 반복 작업과 근거 정리는 AI에 맡기고, 책임이 걸린 판단은 사람이 쥐는 구조다. 딜로이트안진이 범용 코파일럿과 내부 특화 AI를 함께 쓰는 하이브리드 전략을 택한 것도, 모든 걸 한 도구로 해결하려 하지 않았다는 신호다. 자기 조직에 맞는 AI를 검토할 때도 "무엇을 자동화할까"보다 "어디까지 맡기고 어디부터 사람이 볼까"를 먼저 정해야 한다.
## 그래서 뭘 봐야 하나
산업 전반에서 조직 맞춤형 AI 흐름을 볼 때 몇 가지 포인트가 있다. 첫째, 데이터 정리 역량이다. 자체 규정·이력을 구조화해 둔 조직일수록 AI 적용 속도가 빠르다. 둘째, 도구를 내부 효율화에 그치지 않고 외부 고객에게 판매하는 비즈니스로 확장하려는 움직임이다. 삼일PwC의 AX 컨설팅, 삼정KPMG의 AI센터처럼, 자기 업무를 자동화한 경험 자체가 상품이 된다. 업무 흐름을 이해한 상태에서 AI를 설계한다는 점을 IT 기업과의 차별화로 내세우는 대목은, 전문 서비스업이 AI를 어떤 방향으로 소화하는지 보여준다. 다만 이런 확장이 실제 수익 모델로 자리 잡을지는 아직 지켜볼 단계다.
정리하면, 회계법인의 세무 AI는 "AI를 도입했다"는 이야기가 아니라 "범용 AI로는 부족한 영역을 어떻게 좁혀 풀었는가"에 대한 사례다. 조직 맞춤형 AI의 조건은 성능 좋은 모델이 아니라, 정리된 데이터와 사람-AI 사이의 명확한 역할 분담이다. 남이 만든 도구를 부러워하기 전에, 내 조직의 판단 기준이 문서로 남아 있는지부터 확인하는 편이 현실적인 출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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