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D현대중공업이 태안풍력발전과 태안 해상변전소의 설계·조달·제작·설치·시운전 계약을 맺었다. 500MW급 태안 해상풍력 단지에 들어가는 설비로, 공개된 사업 개요에 따르면 2030년 준공이 목표다. 보도는 대형 조선소의 해상풍력 시장 진출이라는 사업 확장 프레임으로 이 소식을 다룬다. 현장에서 보면 이 계약은 다른 신호다. 터빈 수가 아니라 전기를 육지로 보내는 설비가 해상풍력 사업의 공정 임계경로에 올라왔다는 뜻이다.
배경: 왜 중요한가
해상변전소(OSS, Offshore Substation)는 바다 위 터빈들이 만든 전기를 한 지점에 모아 전압을 올린 뒤 해저케이블로 육지에 보내는 설비다. 터빈 사이를 잇는 어레이 케이블은 통상 66kV급이고, 육지 송전망은 국내 기준 154kV 또는 345kV다. 전압이 다르니 중간에 변압기가 필요하고, 그 변압기를 바다 위에 두는 이유는 손실 때문이다. 송전 손실은 전류의 제곱에 비례한다. 같은 전력을 66kV 대신 154kV로 보내면 전류가 약 2.3분의 1로 줄고, 케이블 저항 손실은 5분의 1 수준으로 떨어진다. 수십 km 해저케이블에서 이 차이는 연간 발전량으로 직결된다.
규모가 작을 때는 이 설비 없이도 사업이 됐다. 국내 첫 상업 규모 사례인 서남해 60MW 실증단지에는 해상변전소가 들어갔지만, 수십 MW 단지는 66kV 케이블을 그대로 육지까지 끌어오는 설계도 가능하다. 500MW는 다르다. 14MW 터빈 35기 분량의 전력을 어레이 케이블 전압 그대로 육지로 보내면 케이블 가닥 수와 손실이 모두 사업성을 깨는 수준이 된다. HD현대중공업이 올해 DNV(노르웨이 선급)로부터 설계 검증서를 받은 모델도 정확히 이 조건, 500MW급·14MW 터빈 35기 대응으로 공개돼 있다.
정부는 2030년까지 해상풍력 10.5GW 보급·착공을 목표로 잡았다. 단지 하나가 500MW면 해상변전소 20기 안팎이 필요한 물량이다. 그런데 국내에서 상업 규모 해상변전소를 설계부터 설치까지 수행한 실적은 공개된 자료로는 거의 확인되지 않는다. 태안 건이 주목받는 이유가 여기 있다.
핵심: 일반 기사가 놓치는 지점
해상변전소는 변압기를 바다에 띄운 구조물이 아니다. 육상 변전소에서 당연하게 여기던 조건이 전부 사라진 환경에서, 한번 설치하면 20년 이상 사람 손을 거의 타지 않고 돌아가야 하는 설비다. 어려움은 전기 설계가 아니라 그 주변에 있다.
세부 포인트 1: 무게·설치·접근이 비용을 정한다
500MW급 해상변전소의 상부 구조물은 유럽 사례 기준 수천 톤에 이른다. 변압기 2대, 가스절연개폐장치(GIS, 절연가스로 채운 밀폐형 개폐기), 보조 디젤발전기, 냉각 설비, 소방·제어실이 한 덩어리로 올라간다. 이 중량은 재킷 기초 설계와 설치 선박 선택을 동시에 묶는다. 국내에서 수천 톤급 일체형 상부구조를 한 번에 올릴 수 있는 해상크레인은 손에 꼽히고, 그 선박의 일정이 곧 프로젝트 일정이 된다. 조선소가 이 사업에 들어오는 이유도 여기 있다. 블록 제작, 야드 내 일괄 조립, 대형 중량물 출하는 해양플랜트에서 하던 일과 거의 같다.
설치 뒤에는 접근성이 문제다. 변압기가 고장 나면 육상처럼 다음 날 교체하지 못한다. 서해는 겨울철 파고로 작업 가능일이 줄고, 교체용 변압기와 크레인선을 다시 부르는 비용은 수십억 원 단위로 알려져 있다. 그래서 설계 단계에서 변압기를 2대로 나눠 한 대가 죽어도 절반은 송전하도록 하고, 염분 공기가 GIS와 제어반에 닿지 않도록 실내 가압·제습을 두는 식의 선택이 들어간다. 이 선택마다 중량과 비용이 늘어난다. 신뢰성과 중량은 서로 반대 방향으로 움직인다.
세부 포인트 2: 접속점이 정해져야 변전소가 그려진다
태안 사업이 다른 단지와 갈리는 지점은 접속 방식이다. 공개된 사업 계획에 따르면 폐지되는 태안화력 1호기의 송전설비를 해상풍력 송전에 재활용하고, 발전소 부두를 유지보수 거점으로 전환한다. 신규 송전선로를 짓는 데 걸리는 인허가와 주민 수용성 비용을 줄이는 방식이다. 국내 해상풍력이 터빈이 아니라 계통 접속에서 수년씩 밀린 사례가 반복됐다는 점을 생각하면 합리적인 선택이다.
다만 이 방식은 해상변전소 설계를 접속점에 종속시킨다. 기존 설비의 전압과 접속 가능 용량이 변압기 사양을 결정하고, 석탄화력의 일정한 출력을 전제로 설계된 선로에 바람 따라 출력이 변하는 전원을 얹을 때 전압 변동과 무효전력 보상 설비를 어디에 둘지가 달라진다. 이 부분의 상세 설계 조건은 공개된 자료로는 확인되지 않는다. 확실한 것은 접속 조건이 늦게 확정될수록 해상변전소 설계 변경이 커지고, 수천 톤 구조물의 설계 변경은 육상 변전소와 다른 규모의 재작업을 뜻한다는 점이다. 또 태안 권역에서 1.4GW급 사업이 추진된다고 알려져 있어, 단지별 해상변전소를 따로 두는지, 공유형으로 묶는지도 아직 열려 있는 변수다.
그래서 뭘 봐야 하나
첫째, 국산 기자재의 실제 적용 범위다. HD현대중공업은 DNV 검증 모델에서 주요 기자재를 국산화했다고 밝혔다. 해상용 변압기와 GIS는 육상 제품에 염분·진동·협소 공간 조건을 더한 사양이어서 실적이 곧 진입장벽이다. 이 프로젝트에서 어느 품목까지 국내 제품이 들어가는지가 후속 단지의 공급망을 가늠하는 기준이 된다.
둘째, 설치 선박과 해저케이블 일정이다. 해상변전소는 터빈과 설치 선박을 두고 경쟁한다. 2030년 10.5GW 목표가 실제 착공으로 이어지면 선박과 케이블 공급이 터빈보다 먼저 막힐 가능성이 있다. 이 병목이 국내 선박 확보로 풀리는지, 해외 선박 임차로 비용에 반영되는지가 사업성을 갈라놓을 수 있다.
셋째, 기존 발전소 부지 재활용 모델의 확산 여부다. 태안의 방식이 작동하면 석탄화력 폐지 지역 전반에서 같은 구조가 반복될 수 있다. 다만 발전소마다 송전 전압과 잔여 수명이 달라 그대로 옮겨 쓸 수 있는 공식은 아니다. 조선·중전기·해저케이블 업종에 기회가 열리는 방향은 맞지만, 접속 조건 확정 시점에 따라 일정이 수년 단위로 움직이는 사업이라는 점은 그대로다.
태안 해상변전소 계약은 조선소의 신사업 소식이기보다, 국내 해상풍력이 터빈 설치 단계에서 송전 설계 단계로 넘어왔다는 표지다. 바다 위 변전소는 전기 설비이면서 동시에 중량물 해양구조물이고, 그 설계는 육지 접속점이 정해져야 끝난다. 이 세 조건이 한 프로젝트에서 어떻게 맞물리는지가 2030년 목표의 현실성을 보여주는 첫 사례가 될 것이다.
댓글
댓글 쓰기